걸으며 음악을 듣는다. 음악_잡담

어릴 때 나는 CDP를 들고 다녔다. 가방 안에는 늘 서너 장에서 많게는 열 장 이상의 CD가 들어있었다. 팬시점에서 파는 끈 달린 파우치는 소중한 CDP가 가방 안에서 긁히지 않도록 보호해줬다. 그러나 더 문제는, CDP는 곧잘 튄다는 것이었다. 걸을 때마다 음악은 ‘뽁’ 하고, 물방울 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끊겼다. 10초 튐 방지 CDP를 처음 갖게 된 날, 나는 뛸 듯이 기쁜 마음으로 거리로 나가 뛰었다. CD는 튀었다. 그러나 좋았다. 조심스럽게 걸으면 그만인 것이었다. 음악을 미리 읽어 들여 재생하는 튐 방지 기술은 점점 좋아졌고, 60초까지 보장하게 되었다. 나는 친구들과 CDP를 손에 들고 60초간 미친 듯이 흔들어보았다.

나는 길에서 늘 CDP로 음악을 듣곤 했다. 식비와 교통비를 털어가며 사 모은 CD들을, 학교와 집을 오가면서 들었다. 걷는 즐거움을 알기에는, 나는 너무나 불만으로 가득했다. 별로 공부가 힘들진 않았다. 그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게 싫을 뿐이었다.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학교와 어른들이 너무나 싫었고, 나의 미래와 현재는 너무나 불안했다. 동시에, 내가 느끼는 불안과 분노가 그저 ‘있어 보이려고’ 누군가에게서 베껴온 가짜 불안은 아닐까 하는 또 다른 불안에도 시달렸다.



그러다가, 그렇게 늘어지는 내 걸음에 유난히 힘이 붙는 곡이 있다는 걸 알았다. 때려라, 부숴라, 죽여라, 불태워라 하는 노래들은 아니었다. (물론 그런 곡도 있었다.) 리듬 사이에 ‘쿨렁’하고 다음 박자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도록, BPM 110 이상의 곡이 많았다. 하지만 템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중요한 건 비트였다. ‘쿵쿵’하고 찍어주면서 시원하게 흐르는, 스트레이트한 비트였다. 나는 그 리듬에 맞춰 발걸음의 속도를 조절했고, 한 곡이 끝나면 2~3초간 숨을 돌린 뒤 다시 다른 템포로 걸었다. BPM이 140을 넘어가면 슬슬, 4분간 쉬지 않고 걷기에는 조금 숨 가빠지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 때야말로, 조금 벅찬 걸음을 비트가 떠밀어주었다. 당시에 들었던 곡들을 돌이켜 보니, 스매싱 펌킨스의 'Jellybelly'는 무려 BPM 155였다. 내가 ADHD였나 의심하게 되는 수치지만, 어쨌든 그 곡이 귀에 흐르면 나는 지치지 않았다.

최근에는 러블리즈의 'Candy Jelly Love'를 들었다. ‘좀 약한 곡’이란 평을 많이 받았지만, 나는 무척 좋게 들었다. 그러나 내가 좋게 들은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아도 어딘가가 비었다. 힘들거나 골치 아픈 작업을 마칠 때마다 왠지 이 곡을 듣고 싶어지는 것은, 어딘지 내가 이해한 것 이상이었다. 그러다 오늘, 나의 일을 둘러싼 답답한 현상들과 한동안 이 도시를 떠나 있게 될 나의 연인을 생각하며 길을 걷다 이 노래를 들었다. 느긋하게 꿈틀거리던 비트가 후렴에 접어들어 120 BPM, 초당 두 번을 때리기 시작했다. 러블리즈의 가녀린 소녀들이 걸어 나오는 뮤직비디오 같은 화사함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내 다리에도, 힘이 붙었다. 이 곡에게 마음을 뺏기게 된 것은, 확신할 수 없는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탕탕’ 소리를 내며 발을 내딛는 그 발끝의 리듬 때문이었다.



오래 전, 뭐든지 과하게 예민하기만 하던 내가 이제는 연말이란 핑계로 이런 감성 팔이, 추억 팔이 글도 쓸 줄 아는 능청도 얻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어딘가에 보낼까 궁리도 해보고, 다 쓰고선 블로그에나 올려야겠다고 결심하는, 얕은 판단력도 조금은 늘었다. 자꾸 귀에서 빠져나가던 이어폰 대신 요즘은 커널형 이어폰을 쓰고, CDP와 CD로 묵직하던 파우치 대신 휴대폰으로, 아무리 흔들어도 튈 일은 없이 음악을 듣는다. 스매싱 펌킨스를 들으면 추억에 젖는 오글거림을 조금은 경계하고, 아이돌로지에 글을 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나의 내일을 알지 못하고, 그런 불안이 주는 도취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하지 못하는 불안을 안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비트의 도움을 받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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