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니 - 클러치백 (2014). 음반_잡담

“너 그거 남자들은 안 좋아해.”란 말을 듣는, 여자들만 좋아하는 패션 아이템들이 있다. 그러나 클러치백만큼 남자들에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물건이 있을까. 대체 그 안에 뭐가 들어가면 얼마나 들어간다고, 그게 가방으로서 존재가치가 있긴 한 걸까. (이 문장은 일반 남성이 쉽게 할 법한 생각을 가상으로 재연한 것이며, 글쓴이의 생각 및 특정 사실과는 관계없습니다.) 보통의 남자가 애인의 클러치백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적인 생각은 아마도, “작아서 예쁜 거네”, “물건이 별로 필요 없나 보네”, “지가 좋다니까 뭐…”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 클러치백을 타이틀에 내건 하이니의 데뷔 음반이 있다. 그런데 뭔가 심상치 않다. 곡의 제목부터 “세상의 끝”, “지구를 움직이는 법” 같은 거대한 스케일의 말들이 쏟아진다. 하이니는 당찬 목소리로 자신을 “Queen”이라 선언하고, 단호한 어조로 연인에 대한 복수를 말하며(“Bitter Sweet Revenge”), 불신과 회의의 시선이 담긴 “Pi”는 무려 “세상을 바꾸자던 사람들”에 관한 노래라고 한다. 각 곡에 따라붙은 하이니의 코멘트는 때로 알쏭달쏭한 여운을 남기며 그녀의 자의식을 담담하게 덜어내 보여준다. 가장 필요한 것만 담아서 다니는 클러치백에 들어가기엔 아무래도 모든 것이 어마어마해 보인다. 대체 이건 뭐하는 음반인가. 일단 들어보자.

거창한 제목의 “세상의 끝”은 그야말로 세상의 끝에 서서 노을을 바라보는 듯한 아련하면서도 스펙터클한 이미지로 미니앨범의 장엄한 막을 연다. 사뭇 여유로운 댄서블을 선보이는 “Pi”는 조금 힘을 뺀 하이니의 보컬이 ‘난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노래함으로써 상대에 대한 실망감을 오히려 담담하게 드러낸다. 훵키한 터치로 고급스럽게 번쩍이는 “Clutch Bag”은 케이팝 친화적인 사운드임에도 확실히 남다른 격조를 뽐낸다. 무뚝뚝한 아이러니를 담은 하이니의 보컬과, 여느 때처럼 흐느적거리는 양동근의 랩이 이루는 극명한 대조 또한 놓치기 아쉬운 재미. 강렬한 일렉트로닉 “Queen”은 다시 한번 뻔한 가요의 틀을 벗어나 화려한 무대를 만들어, 거침없이 당당한 하이니의 보컬이 행진하듯 걸어간다. 찬란한 신스 사운드의 클럽뮤직 “지구를 움직이는 법”은, 우주와 함께 춤추며 아픔과 두려움을 날려버린다는 가사처럼 시원하게 날아오른다. “Bitter Sweet Revenge”는 다부진 다짐 같은 보컬 뒤로 유려한 록 사운드가 드넓게 펼쳐진다. 깊은 감성의 “멈춰있어”는 불안과 슬픔을 풀어놓으면서도 당당하기만 한 보컬이 와 닿으면서, 지금까지 화려하고 댄서블한 곡들이 유난히 가슴을 파고들었던 이유를 짐작케 해준다.

의문이 조금은 풀린다. 타이틀곡 “Clutch Bag”이 조그맣고 화려한 클러치백 속에 숨겨둔 묵직한 속내를 노래하듯, 언뜻 조그마해 보이는 이 음반은 큰 야심으로 내용을 채웠다. 그러나 클러치백에 갈아신을 운동화를 담지 않듯, 꼭 필요한 것만 담았다. 그것도, 어느 한 곳 불룩 튀어나오지 않게 놀라운 공간감각을 발휘해 차곡차곡. 하이니가 그녀의 목소리처럼 커다란 야심과 깊은 속내를 내놓았다면, 최고의 프로듀서들이 고도의 수납감각으로 매끈하게 다진 것이 이 음반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록과 일렉트로닉의 장점만으로 빛난다. 록의 당당한 애티튜드와 유려한 감성, 일렉트로닉의 화려한 패셔너블함과 뜨거운 댄서블함이 그것이다. 마치, 쓸데없어 보이지만 사랑스럽고 우아한 클러치백처럼 말이다. 이걸 들고 오늘 밤 어디로 갈까, 그것은 당신의 몫이다.

미묘 (아이돌로지, 웨이브)
/ 라이너노트 프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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