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의 소리 잡담. 이글루잉

수영을 다니고 있다. 나는 내가 몇 바퀴를 돌았는지 하염없이 헷갈린다. 그래, 나는 원래 천천히 숫자를 세어 올리는 것에 약하고, 수시로 딴 생각을 한다. 그래서 방법을 고안해냈다. 갈 때마다 알파벳 한 글자로 시작하는 한 단어를 떠올리고, 돌아올 땐 다음 글자로 시작하는 한 단어를 떠올린다. 알파벳 26글자를 다 하고 나면 한글 자음 14자로 넘어간다. 도합 40자, 25m 풀이라면 왕복 20회에 1km가 된다. 하다 보니 이게 제법 재미가 있다는 걸 알았다. 매번 다른 테마를 두고 그 테마 내에서 단어들을 떠올리곤 한다. 작가 이름, 미술가 이름, 학자 이름, 음악가 이름, 불어 동사, 불어 사람 이름(prénom), 아이돌 이름... 대개는 첫 글자인 A로 시작하는 단어를 하나 떠올렸을 때 그날의 테마가 결정된다. 그저께는 "Aladdin"이었다. 내친 김에 디즈니 제목들로 이어갔다. Beauty and the Beast, Cinderella, Dumbo, 그리고는 E가 떠오르지 않아 "디즈니 언저리 세계의 제목들"로 테마를 타협하고 Edward Scissorhand를 택했다. Frozen, Glee를 지나... Hannibal을 떠올리고 말았다. 나의 수영세계는 붕괴했다. I가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아 한껏 스트레스를 받은 뒤에야 Hannah Montana도 있고 Highschool Musical도 있다는 걸 생각해냈다.

어쨌거나 이 놀이는 대부분 U-W-X-Z에서 망가지고 만다.

대개의 경우 나는 안나와 함께 수영장에 간다. 그녀는 벽면에 발을 붙이고 무릎을 바짝 접은 채 상체를 곧게 물 속에 띄우고 물안경을 낀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며, 힘차게 벽을 차며 출발하기 전 1초 가량을 멈춰 있는다. 그 모습은 공격의 능력을 갖췄으나 그럴 의사가 없는 동물 같이 수려하게 유연한 긴장감을 담고 있어, 나는 매번 멋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저께는 혼자 수영장을 찾았다. 일요일 오후라서 아이들이 시끄러웠지만 생각보다 사람은 많지 않았다. 창밖에서 햇살이 물을 부드럽게 뚫고 있었다.

몸을 데울 겸 평영을 하다가 알았다. 수영장이란 공간은 수영장 건물 밖(A)과 건물 안(B), 다시 물 속(C)의 세 단계로 나뉜다. 그리고 물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을 때마다 나는 나의 호흡과 귓가가 수면에 부딪히는 굉음을 듣는다. 이 순간은 B와 C를 가로지르기도 하지만 또한 B와 C를 모두 담고 있는 트랜지션을 이룬다. 그리고 나는 수면 위로 나오는 나를 기다렸다 저격하는 듯한 어린이들의 날카로운 목소리의 세계와 물 속에서 먹먹하게 막힌(étouffé) 채 흩어지는 숨의 부드럽게 따가운 소음의 세계를 규칙적으로 왕복한다. 그것은 0과 1의 교차와는 다르다. 1과 2의 교차라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이의 트랜지션은 디지털처럼 분절적이지도, 아날로그처럼 연속적이지도 않다. 수면에 부딪히는 순간이 1.5, 혹은 1.5에 수렴하는 어떤 수를 이루기 때문이다. 디지털 샘플링의 세계라고 하는 게 나을까. 막 이래.

자유영으로 바꿔보았다. 평소엔 물 속에서 숨을 내쉬지만, 사람도 많지 않은 김에 최대한 숨을 참으면서, 물 속에서도 숨을 내쉬지 않고 가보았다. 예의 숨이 부서지는 소음이 무척 컸다는 걸 알았다. 오직 나만 숨을 쉬지 않으면, 물 속은 고요했다. 내가 팔을 젓는 소리도, 발차기를 하는 소리도, 그리 크지만은 않았다. 수면 위로 나온 팔을 물에 넣는 길에 손가락 끝으로 수면을 스쳐보면 자르륵, 하는 '물소리'가 생생하게 들릴 정도였다. 그리고 물 속에서 먹먹하게 막힌 소리로서 존재하는 공간은, 6개의 레인이 있고 깊은 곳은 2m가 넘는 이 커다란 물 덩어리 속에서, 숨을 쉬지 않고 있는 내 주위 지극히 가까운 곳 뿐이었다. 어린 아이가 수영하는 사람을 그리고는, 아마도 카레에서 당근을 가장 먼저 먹는 아이일지도 모르겠지만, 몸 주위부터 파랗게 칠하다가 이내 지겨워져서 그만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소 가쁜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키자, 어느 아저씨의 베트남어 같은 프랑스어인지 베트남어 같은 영어인지 알아듣기 어려운 말소리와, 다른 아저씨의 아프리카어 같은 프랑스어인지 아프리카어 같은 영어인지 알아듣기 어려운 말소리, 스페인어 화자 특유의 맹하게 귀여운 프랑스어와 얄미운 파리지앵 말투가 동시에 들려왔다.

덧글

  • 소소 2014/07/03 10:41 # 답글

    미묘님, 뜬금없지만..... 레퍼런스와 표절의 차이는 무엇인지요?
  • mimyo_ 2014/09/02 07:49 #

    답이 늦어서 보실지 모르겠지만.. 작곡도 다른 창작과 마찬가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만은 아니죠. 어떤 곡을 듣고 비슷한 스타일이나 아이디어의 곡을 만들고자 참고할 때 "레퍼런싱" 한다고들 합니다. 표절은 그대로 베끼는 것이고요. 참고했느냐 훔쳤느냐, 현상을 보고 둘을 구별하기란 쉽지 않죠. 결국 궁극의 답은 마음 속에 있다고 밖에..
  • camry 2014/08/05 06:42 # 삭제 답글

    셜록에서 3시즌 연속으로 저지른 전례가 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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