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세상과 관계하는 법에 관한 잡담. 음악_잡담

1. 한국 시각으로 어제 하루 사이에 벌어진 두 가지 이슈가 고약한 우연으로 겹쳐졌을 때, 그것이 서로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다. 하나는 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의 "세월호 침몰사고, 음악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글에 따른 논쟁이고, 또 하나는 고양문화재단의 뷰티풀 민트 라이프 페스티벌(이하 뷰민라) 취소 통보 사건이다.

2. 나는 서정민갑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그의 글이 때로 가슴을 울리는 것을 느껴왔고, 어떤 종류의 비아냥 속에서도 그가 신념을 지켜나가는 것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의지를 존경스럽게 생각한다고 내가 말한 것은 예의를 갖추기 위한 겉치레가 아니다. 그러나 모두가 공황 상태에서 누군가 희생양을 찾아 눈을 휘번득일 때에, 비평가가 음악가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글을 썼다는 것은 큰 아쉬움을 남긴다. 다시, 나는 그가 그런 의도는 아니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그것은 충분히 그렇게 읽히는 글이었고, 이는 글에 대한 음악가들의 반응에서 확인할 수 있다.

3. 고양문화재단은 백성운 새누리당 고양시장 예비후보의 발언에 뒤이어 뷰민라를 행사 전일 오후 6시경에 일방적으로 취소 통보했다. 일개 시장 예비후보의 발언에 휘둘려 (혹은 편승해) 문화사업을 지켜주지 않는 단체로서, 문화재단이란 이름을 내걸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어쨌든 이 두 주체는 공통의 시선을 노출한다. 그것은 "뷰민라 강행은 부적절하다" ←"애도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 ← "뷰민라는 '풍악'이 '흥청'거린다." ← "음악은 여흥이다." ← "음악은 (특정한) 목적에 봉사한다."를 순서대로 전제하고 있다. 백성운 예비후보의 글이, 까발리는, 천박한 태도의 뒤에는, 그만큼 천박한 문화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4. 펫샵보이즈는 1989년 싱글 'It's Alright'에서, 아프가니스탄의 독재, 남아프리카의 혁명, 유라시아의 압제, 사라져가는 숲, 사막화, 기근에도 불구하고, "다 괜찮아. 음악은 영원히 흐를 테니까." "음악이 계속 흐르기만 한다면 다 괜찮아."라고 노래했다. "괜찮아, 괜찮아"라고 끊임없이 되뇌이는 이 곡은 그러나 세계의 부조리를 외면할 것을 주장하지 않는다. 세계에 관해 노래하면서 "이걸로 됐어"라 만족하는 음악가들에 대한 비판에 가깝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노래하는 것이 공허한 가식일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세계의 부조리에 괴로워하는 아이러니야말로 이 곡의 빛나는 아름다움이다.


5. 이 곡이 1989년 곡이라 했다. 음악이 세상을 노래해야[만] 하는가의 당위성은 이 시점에서 이미 무너졌다. (공교롭게도 우리의 순수-참여문학 논쟁은 그보다 더 오랜 1960년대였다.) 세상을 노래하기만 하면 다 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을 노래하지 않는다고 될 일도 아니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수능 요점정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닥치고 세상을 노래해"라고도, "세상을 노래하지 마라"라고도 할 수 없는 어정쩡함과 애매모호함, 그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여기서 '현실'이라 함은 누군가 "어쩔 수 없어"라고 하면 "납득하기 힘든 내가 너무 순수한 걸까?"라며 중2병 노릇을 하는 대상으로서의 '현실'이 아니다. '현실'의 음악가들은 과거에 '정립'된 이 애매모호함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음악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윤영배가 깨질 듯한 목소리로 "위험한 세계"를 부르기도 하고, 하헌진이 찌질한 사랑노래를 철거 투쟁 현장에서 부르기도 한다. 소모임 레코드가 서정민갑에게 "두리반, <이야기해주세요>, 분더바는 잊었느냐"고 말한 것은 그래서 울림을 갖는다. 민트페이퍼의 이종현 대표가 "소리 내어 웃거나 울 수 없고, 웃고 있지만 결코 즐거울 리 없는 삶 속에서 그래도 남아 있는 희망과 더불어 더욱 강해져야만 하는 나와 우리를 얻어가길 바람"으로 뷰민라를 강행한다고 한 것도, 음악가가 세상과 관계 맺는 한 방식이다.

6. "그런 걸로 세상이 바뀌겠느냐"고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을 꼭 음악이 바꿔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차치하고도, 이 지적에는 끝이 없다. "무엇이 진정한 참여인가"라는 질문 하나만으로도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우문이기 때문이다. 여기 한 음악가 김세연 씨가 있어 세월호 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한 음악을 한다고 해보자. 그녀가 선장을 비난하는 곡 "무책임한 영혼"을 발표해 바이럴 대박을 친다면 누군가는 청해진 해운이 진짜 문제라 할 것이다. 그녀가 후속곡 "푸른 바다의 거짓말"을 발표해 멜론 실시간 1위를 한다면 누군가는 정부의 미진한 대응이 진짜 문제라 할 것이다. 그녀가 미니앨범 2집 "무너진 사령탑"으로 유튜브 조회수 신기록을 찍으면 누군가는 안전불감증을, 누군가는 부정부패를, 좌빨의 선동을, 금전만능주의를, 신자유주의를, 자본주의를 진짜 문제라고 지적할 것이다. 결국 가련한 김세연 씨는 세계의 구조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거듭한 끝에 인간의 영혼과 초월적 사랑을 노래하는 CCM 가수가 되어 몽골로 선교여행을 떠난다. (까페베네 로고 삽입)

물론 당신은 김세연 씨의 커리어 중 어느 한 단계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다룬 다양한 스케일의 주제들 중 하나쯤은 당신이 생각하는 '진짜 문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문제'라는 건 당신 혹은 나라는 일개 개인의 의견에 불과하다. 누가, 그것이 '진짜 문제'의 '정답'이라고, 그것만이 김세연 씨가 사회에 참여하는 진정한 주제라고 단언할 수 있나. 상대가 만만한 홍대여신이라고 시건방 떠는 행동은 서로 삼가자.

7. '세상'과 음악의 관계는, "'사회참여 음악'이냐 아니냐"의 흑백으로 나뉘지 않는다. 음악가는 펫샵보이즈가 비아냥대듯 '사회참여 음악'을 하면서도 사회를 외면할 수도 있고, 하헌진이나 뷰민라처럼 '사회와 무관한 음악'을 통해서도 사회에 '참여'할 수 있다. 음악은 세상에 '봉사'하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주체는 다른 주체와 관계 맺는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이 사실을 외면한 듯 보이는 것이 굳이 정태춘(만)을 말한 서정민갑에 대한 아쉬움이다. 또한, 이 점에 대해 완벽하게 무지한 것이 고양문화™재단과 백성운 예비후보의 천박한 무교양이다.

음악가는 음악가일 뿐이다. 그가 자신의 길을 선택하게 내버려두라. 음악은 음악일 뿐이다. 그가 자신의 길을 선택하게 내버려두라. 어차피 나도, 당신도, 그 중 마음에 드는 것을 취사선택하고 때로 지지할 뿐이다. "이 음악에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고 싶다면, 먼저 "나의 존재에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물어라. 물론 당신은 소중한 생명, 소중한 자아, 소중한 존재다. 그런데 음악은 아닌가.

덧글

  • em 2014/04/26 11:34 # 삭제 답글

    지금 상황을 보자면 여객선 하나에서 시작된 '현실'이 미디어와 정치의 탐욕과 사람들의 분노와 슬픔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그렇게 자란 현실이 현재 음악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 테고요.

    혹시나 발생할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여기서 말하는 현실이란 단순히 선장이나 정부기관, 언론, 해운사 등의 부도덕함이나 무능함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더해서 필요 이상으로 생산된 분노와 그런 분노를 누군가가 이용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부조리까지 모두를 포함하는 말입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음악이 사회참여적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음악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정치적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음악가들은 자신의 행동/행동하지 않음을 뒷받침해주는 논거를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는 시점인 것 같습니다. 현실을 걱정해야 하는 당위의 문제라기보다는, 음악가 자신의 행동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책으로서 말입니다. 불행하게도, 그런 현실을 우리가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 mimyo_ 2014/04/26 17:25 #

    음악가 자신의 행동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책이 필요하다면 정말 슬픈 일입니다. 아직은, 그렇게까지 걱정하지는 말기로 했으면 좋겠어요.
  • 멋부리는 눈토끼 2014/04/26 12:43 # 답글

    예술의 현실참여에 대한 논쟁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뭔가 당위성을 주장하는 소리는 다 필터링하는게 마음 편할 것 같습니다. 남에게 뭘 해야 한다느니 하지 말아야 한다느니 하는 사람들 중에 정상인 본 기억이 거의 없기에.
  • mimyo_ 2014/04/26 15:36 #

    제가 정상인은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 당위성이 필요한 부분이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저 있는' 음악과 현실이 맺는 관계의 양상이 어떤 특정한 것이어야 할 당위를 부정할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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