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형 잡담, 2013년 10월 27일. 이글루잉

1. 때때로 나는 얇은 막으로 둘러진 원형의 세포 속에 멜랑콜리만을 채워넣은 존재처럼 굴기도 한다. 동시에 나는 멜랑콜리를 경계하는 듯이 굴기도 함으로써, 그 원형 세포와 나의 자기혐오를 나란히 놓기도 한다, 마치 불어 문장 분사의 성(性)과 수(數)를 일치시키듯이.

내가 종종 배배 꼬이는 부끄러움으로, 추억하기보다는 회상하곤 하는, 스무살 언저리의 일이다. 짧은 연수를 핑계로 프랑스에 놀러와 여행을 다닌 뒤 서울로 돌아갔을 때, 나는 수많은 노스탈지아의 단초들을 여행용 트렁크에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홍세화의 자녀들이 그리워했다던 파리 지하철의 퀴퀴한 냄새 틈으로 자주도 코를 스치던 이세이 미야케 풍의 오이향 향수 냄새라든지, 이방인에겐 프랑스 기차역의 후각 정체성을 만든다 해도 좋을 빵 굽는 냄새라든지, 오래된 블록의 인도가 아침마다 축축하게 젖어 운동화 바닥을 미끄러뜨리곤 하던 감각이라든지, 구름이 바닥까지 내려온 듯이 축축하던 겨울 세느강의 공기라든지. 지금이라면 그러지 않겠지만 그때의 나는, 아직 어렸을 때라는 말로 민망함을 살짝 가리고 얘기해 보자면, 그런 것들을 마음껏 그리워하며 마음껏 멜랑콜릭해지곤 했다.

지금의 나는 나이가 더 들었고 또한 파리에 살고 있기에, 그때의 멜랑콜리가 진정 나의 성격적 부분인지를 판단할 대조군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니 '그때는 어리고 뭘 몰랐지'란 말로 나의 어린 시절을 비웃으며, 그 모든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전력으로 거부할 수 있다.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때때로 생각한다. 책상 밑의 팬 소음과 거리의 (결코 멈추지 않는) 자동차 엔진 소리 사이에 간헐적으로 끼어드는 부랑자들의 커다란 목소리, 바스티유의 술집에서 거나하게 취해 (경기가 있었는지 나야 알 길이 없으나) 응원가를 합창해대는 소리, 퉁명스러운 사람들, 그러나 '나는 열려 있다'는 제스춰를 참지 못하겠다는 양 번거롭게 말을 거는 사람들, 또한 성격이 나쁘다기보다는 그저 악랄한 게 좋은 것이라 믿고 그저 개념이 없어서 인종적, 성차별적 언동을 거리낌 없이 풀어놓는 사람들, 내가 급할 때면 반드시 늑장을 부리는 사람들, 한없이 비효율적인 주제에 '개념 없고 무질서한 외국인들 때문에' 골치라는 듯한 표정을 보이는 경시청 이민국의 풍경... 그런 것들을 나는, 언젠가, 멜랑콜리를 더해 추억하게 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최소한 두 가지의 다른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만 알 수 있다. 첫째, 그 '언젠가'의 나, 즉 마흔, 쉰, 예순의 나는 그런 멜랑콜리의 원형세포로 이뤄진 존재일까. 그리고 둘째, '이런 것도' '다 지나면 그리워질 일'인가. 우선 나는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유보한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대개 그렇다'고 답하더라도. 그리고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내가 지금 파리에서 살고 있지 않았다면 대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유학을 나온 행위는, 스무살의 나의 멜랑콜리가 주는 민망함을 잘라낸 대신, 지금의, 앞으로의-멜랑콜리에-대한-전조, 에 대한 판단의 근거도 없애버렸다.

메데타시, 메데타시, 라고 해두자, 그냥.

2. 루 리드 선생이 갔다고 한다. 마침 나는 코인 세탁기 앞에서, SMP의 비현실성과 피상성을 소격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그 참조목록인 비주얼계 록의 참조목록인 글램을 살펴야 하려나, 하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부디 그가 하늘의 와일드사이드를 걷고 있길. (하지만 사실 나는 이런 건 그다지 소용 없는 얘기라고도 생각한다.)

덧글

  • 2013/10/30 17:0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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