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의 약식 호적 등본. 음악_잡담

한국의 대중음악은 원래 가요라 불렸다. 어떤 이들에겐 가치중립적인 말이었지만, 신성한 ‘록의 영혼’을 간직한 사람들이나 ‘선진국’ 문화를 즐기는 이들은 비하의 뉘앙스를 담기도 했다. 변방의 열등감은 영미권 팝을 열심히 뒤쫓게 했고, 특히 90년대에 몇 가지 분기점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가요는 가요였다. 그러던 우리에게 한류라는 말이 등장했다. 변방인 우리의 문화가 세계에서 인정받는다는 자부심은 애국자들의 피를 끓게 했다. 그리고 가요와 한류가 겹쳐지는 지점에서 케이팝이란 표현이 등장했다. 이제는 가요의 일부를, 주로 해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용어로 자리잡았다.

케이팝에게는 바다 건너 사촌언니가 있다. 일본의 제이팝이다. (백제 유민의 후손들이 제이팝을 만들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겠지.) 제이팝은 기존의 일본 대중음악과는 구별되는, 주로 영미권의 영향이 강한 음악을 가리키는 용어로 출발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단순히 일본의 주류 대중음악을 지칭하는 용어처럼 일반화되었다가, 우타다 히카루 등 ‘더 미국적인’ 음악이 등장하면서 어느새 ‘기존의 일본 대중음악’의 자리로 밀려났다 하겠다.

제이팝은 국적에 대한 분류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음악적 공통점을 연상시키는 용어가 되었다. 누군가는 ‘뽕끼’를 말할 것이고, 누군가는 오타쿠 문화에 뿌리내린 펑키한 스타일을 들 것이다. 혹은 무슨 상관인지 조금 아리송한 날씨 이야기가 곧잘 등장하는 가사를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 정체를 종잡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외국인인 우리는 제이팝이란 말을 들었을 때 특정한 느낌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이 용어는 일본의 대중음악이 ‘월드뮤직'이란 폭력적인 분류에 대항하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하여튼 변방 음악"으로 넘어가지 않고, 뭔가 독자적인 특징을 갖는 음악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것이다.

케이팝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우리는 한국의 주류 대중음악이 가진 뭔지 모를 특징을 알고 있다. 장르의 벽을 넘어서는, 흔히 ‘가요삘’이라 부르는 특유의 느낌 말이다. 정서일 수도 있고, 멜로디의 색채감이나 믹싱 스타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외국인에게는 그렇지 않다. 언어를 전혀 모른 채 들으면 한국과 태국의 가요를 구별하기 힘든 것이다. 어쩌면 케이팝은 ‘월드뮤직’에 대해 제한적이나마 대항하는 프레임으로서 기능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케이팝은 조금 더 나아가 특정한 음악적 스타일을 가리키는 표현에 가까워졌다. 해외의 케이팝 팬들이 주로 아이돌팝을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드래곤과 카라를 함께 엮는 케이팝의 범주는 윤종신과 에프엑스를 한 데 묶는 가요의 범주보다는 선명하다. 이제는 국내의 우리마저도 케이팝이란 말을 들었을 때 어렴풋하게나마 어떤 장르나 스타일을 떠올리게 된다. 국적 혹은 산업적 분류였던 용어가 좀 더 구체적인 특징에 관한 용어로 변화한 것이다.

바꿔서 말하자면 이런 얘기도 된다. 예전에는 어떤 음악이 케이팝인지 기준이 분명한 편이었다. 한국에서 한국 자본과 인력에 의해 생산된 음악이란 것이었다. 물론 관점은 다양할 수 있었다. 해외에서 인기를 얻어야 케이팝이라 부르겠다면 해외 시장 진출 여부와 그 성과의 기준선을 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해외에서 사온 곡을 어떻게 볼지 하는 논의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판단은 객관적 사실과 지표에 기반할 수 있었다. 반면 이제는 장르적 특징도 고려해야 한다. 모든 조건이 다 맞아도 스타일이 결정적으로 다르다면 판단이 애매해지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일본에서처럼 “우리는 케이팝이 아닙니다.”라고 손사래를 치는 음악가들을 보게 될 수도 있다. 혹은 누군가가 “이 곡은 진정한 케이팝이 아니야!”라고 열변을 토하는, 딱히 쓸데 없는 광경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올 여름, 우리는 이변을 겪었다. 전적으로 내수 시장을 노리고 만들었던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그 세계적 히트는 해외의 기존 케이팝 팬들의 블로그에 “나는 강남 스타일 이전부터 케이팝을 들었다.”는 배너가 걸리게 했다. 인지심리학에서 강남 좌파 예찬론까지, ‘드립’에 가까운 분석들은 무시하고 넘어가자. 해외의 반응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실 하나는, 기존의 케이팝 팬덤과 싸이의 소비층은 다른 청자들이라는 것이다. 해외 케이팝 블로그들을 보면 아이돌팝에서 시작된 호기심이 차라리 인디를 향하더라도 ‘기존’ 주류 가요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분류하자면 ‘기존’ 주류 가요에 속할 싸이는, 케이팝 팬들에게도 새로운 발견이었다.

싸이로 인해 케이팝 팬덤의 외연이 변할지는 미지수다. 대부분은 “강남 스타일” 한 곡만을 즐기고는 5년쯤 뒤에 유쾌한 추억을 떠올리며 말춤을 한번쯤 추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그러나 케이팝의 세계는 조금 달라질지도 모른다. 국내의 경향에서 출발한 제이팝과는 조금 다르게, 케이팝은 태생부터 해외 소비자들의 시선과 맞물려 태어난 개념이기 때문이다. 퍼포먼스에 주안점을 둔 ‘정통 댄스음악’인 싸이는 마침, 아이돌팝 소비자들에게도 크게 낯설지만은 않은 특징들을 지녔다. 누군가는 싸이를 통해 한국의 다른 주류 가요들을 발견할 것이고, 누군가는 싸이를 아이돌팝의 변종 정도로 이해할 것이다. 혹은 그저 잊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싸이의 발견이란 현상은 케이팝에 대한 시선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고, 그것은 케이팝의 외연을 바꿀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쩌면 케이팝이라는 개념이 다시 한번 크게 변화하는 분기점에 서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GQ Korea 2012년 11월호

덧글

  • 쓴귤 2012/12/01 11:36 # 답글

    우왕. GQ 외부 필자!
  • mimyo_ 2012/12/01 11:49 #

    ㅎㅎ 이제 겨우 4번 기고한 초짜입니다. 에디터님의 지도 편달 하에.. :)
  • rumic71 2012/12/01 11:54 # 답글

    아이돌 팝스도 이미 80년대에 일본에서 사용하던 표현이죠.
  • mimyo_ 2012/12/01 12:19 #

    네, 특히 아이돌팝은 영미권에 비해 거의 전적으로 일본의 개념을 수입한 것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 2012/12/03 02:2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2/07 12:2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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