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2012년 8월 29일. 이글루잉

1. 8월이 다 지나가고 있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보면, "이런 여름을 보내길 원하지 않았다"고 해도 될 법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떤 여름이 되길 바란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번 봄에는 예년 봄처럼 끔찍하게 괴롭진 않았으니 ㅡ 물론, 내 기준에서의 괴로움을 얘기하는 것이다 ㅡ 고통을 할부로 치르게 되었나 싶기도 하고. 혼자서 잠시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생각했는데, 휴대폰을 새로 사는 등의 일들로 돈을 너무 많이 써서 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즐거운 순간들이 없었느냐 한다면 그렇지는 않으나, 어쨌거나 이렇게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2. ask.fm에서 "부르주아라고 불리면 기분 나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별 생각 없이 "아무렇지도 않다"고 대답하고 넘어갔는데, 문득 다시 떠올랐다. 그렇구나, 누군가는 내가 그렇게 불리면 기분이 나쁠 것이라 생각하고, 또 누군가는 내가 기분 나쁘길 바라며 그런 말을 할 수도 있겠구나. 그게 왜 기분 나쁜 일이 되어야 할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그저 왠지 머리 속에서 돌아다닌다.

3. 조금 다른 측면에서, 우아함과 존엄성, 선의와 신실함이 재산을 담보로 한다는 것을 느끼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물론 어떻게 보면 저것들이 모두 부르주아적 가치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런 가치를 내던지지 못하는 것이 부르주아적 마인드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어찌해도 그런 가치에 애착을 느끼고야 마는 내가 부르주아적이라 비난 받아야 한다면 그건 아마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4. 요 며칠 사이에 몇 가지의 배신을 겪었다. 어떤 매장 직원은 매뉴얼에 따라 나에게 무료로 제공해야 할 서비스에 20유로를 과금한 뒤, 아무 생각 없이 부적절한 상품을 제공했다. 어떤 매장 직원은 나의 문의에 대해 사실과는 반대로 대답했고, 두 명의 전화 상담원은 나에게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 그들이 왜 그래야 했는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프랑스의 공공 서비스가 한국에 비해 불친절하고 느리다고는 많이도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것이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이를테면 고객이 원하기 때문에 굽실거리거나 생글거리고, 후다닥 뛰어가서 처리하거나, 복잡한 일을 순식간에 계산해내는 일 같은 것은 기대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에게 주는 불편의 반대편에는 한국의 과잉 친절에 대해 느끼는 불편함이 존재하고, 상대방이 생각하는 합리적 이유에 대해서 존중하고 인내할 마음가짐을, 일부는 갖추고, 일부는 갖춰가려 하고 있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에 당한 일들은 도무지 왜 그들이 그래야만 했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귀찮음이나 게으름만 가지고는 설명하는 데에 한계가 있는 정성 들인 거짓말도 있었고. 이것은 나에 대한 악의라고 보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5. 그런가 하면, 며칠 전 내가 휴대폰을 소매치기 당한 게이바의 직원이 내게 보인 악의는 납득할 수 있는 것이었다. 새벽 6시에 걸레질하고 있는데 와서 자꾸 들어가려고 하고 혹시 못 봤냐고 물어보니 짜증이 날 수도 있겠지. 물론 나는 끝까지 정중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태도를 유지했고, 반면 그는 내게 그렇게까지 있는 힘껏 신경질을 부릴 필요가 없었음에도 단 한 마디도 듣기 싫다는 투로 소리를 질러댔다. 평생 게이바 바닥 걸레질이나 하고 살라고 소리질러주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그가 평생 게이바바닥 걸레질이나 하고 살라고 마음 속으로 저주한 것은 반성하게 된다.

6. 요즘 즐기고 있는 길티 플레져는, 과일을 물로 씻은 뒤 젖은 손에 그대로 쥐고서 키친 타올을 뜯어 손과 과일의 물기를 닦는 것이다.

7. 얼마 전 한 후배가, '남자들은 뒷소문 나는 것 같은 부담은 없으니 사실 즐기고자 마음만 먹으면 편하게 즐길 수도 있지 않나?'라고 물어왔다. 그냥 '결국 일이 일어나는 것은 여자 쪽의 '동의'가 필요한 일이니까? ㅎㅎ' 라는 정도로 얼버무렸는데, 뭐라고 해야 할까... 아휴, 그냥 모르겠다 나는. ㅎ

8. 사뭇 많은 것들에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이대로 가을이 오면 또 가을 탄답시고 헤매는 건 아닐지 걱정. 나 같은 것보다 훨씬 더 큰 회의와 절망 속에서 구르면서도 꿋꿋이 해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상기하고 정신 차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는 필요성을 의미하는 '그래야지'지만, 의지를 의미하는 '그래야지'가, 음, 되어야지..

덧글

  • 2012/08/30 19:49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mimyo_ 2012/09/11 10:22 #

    으 이제 봤네요. 네, 의지의 차이, 박수를 보내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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