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기동 단편선 - 백년 (2012). 음반_잡담

회기동 단편선의 첫 정규앨범 <백년>은 한껏 욕심을 부린 앨범이다. 짐짓 “조용한 포크”인양 시작하는 첫 트랙 <백년>부터 일렉트릭 기타와 격렬한 샤우트로 낙차 큰 반전을 만들고, 풀밴드에 필드레코딩, 일렉트로닉스, 노이즈 등을 활용한 트랙들이 넘쳐난다. 세션 목록은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 노 리스펙트 포 뷰티, 404, 악어들, 스클라벤탄츠, 퍼스트에이드 등으로 슈게이징이나 포스트록, 노이즈와 일렉트로니카에 이르고 있어, 이 앨범이 흔히 생각하는 포크 음악에서 꽤나 멀리 나가고 있음을 바로 짐작케 해준다.

보컬은 디스토션이나 딜레이 등의 이펙트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뿐더러, 찜찜할 정도로 나지막하거나 위악적일 정도로 가녀리다가도 괴로울 정도로 우수꽝스럽거나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기도 하며, 때로는 구성지고 때로는 무덤덤한 목소리를 오가는 등 창법도 변화무쌍하다. 그로테스크한 이야기의 폭력적인 긴장을 쌓아가는 <이상한 목>처럼, 앨범 전체의 편곡과 연주는 매우 연극적이고 다이내믹하다. <소독차>의 기타가 가슴 먹먹한 사운드로 때로는 보컬을 압도하기까지 하는 것은, 이 앨범이 풍성한 표현을 위해 믹스까지 과감하게 이용되는 총력전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단편선은, 이 앨범에서 어쩌면 가장 인상적일 수 있을 <오늘 나는>을 깔끔하고 화려하게 녹음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활동가이자 음악가인 회기동 단편선의 곡들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현장을 거치며 벼려진 곡이기 때문일 것이다. 침이 튈 듯이 가깝게 느껴지는 보컬과 기타 한 대만으로 이뤄진 편곡과 녹음은, 현장의 생명력을 곡 안으로 그대로 가져다 놓는다. 이 점은 역설적으로 <백년>이, 단순히 최대한 많은 것을 쏟아붓기만 하는 시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라이브 연주자로서의 단편선은, 포크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이야기를 전달”함에 있어 연극적인 효과를 많이 활용하는 음악가이다. 앨범에서도 여러가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고민의 흔적이 느껴진다. 각각의 곡은 풍성하게 갖춰진 음악 언어의 보캐뷸러리에서 섬세하게 고른 어휘들로 연출되었다. 또한 곡들이 모인 집합체로서의 앨범은, 과거와 절망을 노래하는 전반부에서 점차 희망과 미래를 노래하는 후반부로 흐르도록 구성되었다.

이것은 이 앨범이, 우리의 삶과 서서히 작별을 고하고 있는 앨범 포맷에 대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엿보게 한다. 그것은 요컨대, 현장의 라이브로 활동하는 음악가가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고 프로듀스하여 앨범을 만든다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고 또 가져야 하는가, 무엇을 다르게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너무나 리얼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세상(<빙빙빙>), 잔혹한 현실과 서글프게 비루한 일상의 교차(<오늘 나는>), 어쩔 수 없는 나약함과 아픔 속에서도 앞으로 향하고자 하는 희망(<동행>, <코피가 날 무렵>) 등, 단편선은 시종일관 은근하고 애매모호하게 남는 은유들로 자신의 삶을 노래한다. 수록곡 중 가장 오래전에 쓰여진 것은 2007년의 <동행>으로, 이 앨범은 길게는 4년 반에 걸쳐 쓰여진 곡들을 담고 있다. 그 기간 동안 수많은 공연들을 거치며 조금씩 변화하고 숙성되어 온 곡들이다. 그리고 그는 이 곡들을 소재로 하여, 레코딩의 형태가 아니면 만들어내기 힘든 지점까지 도달하기 원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보다 다층적으로 펼쳐진 음악적 텍스트의 깊이다.

단편선 자신의 생활 자체에도 제법 지장을 줄 만큼의 시간과 비용을 들인 끝에 텀블벅 tumblbug.com 후원을 통해 끝내 완성된 앨범이다. 자기 음반에 욕심을 내지 않을 수 있는 음악가가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이 앨범 전체에 흐르는, 누군가에겐 의외고 누군가에겐 신선할 다양성과 변칙성들은, 그의 욕심을 정당화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백년>의 아홉 곡은 그의 삶에서 직접 출발한 이야기들, 단편선이란 음악가의 눈과 귀로 담은 오늘의 모습과 음악을, 가장 효과적으로 들려주기 위해 긴 고통을 겪었다. 그리고 그가 뚝심 있게  한껏 부려온 욕심에 부응할 만한 결과물이 바로, 풍성한 결과 함께 세상에 내어놓는 <백년>이다.

*앨범 보도자료에 포함.

2012.4.20., 자립음악생산조합
  1. 백년
  2. 이상한 목
  3. 소독차
  4. 백치들
  5. 빙빙빙
  6. 오늘 나는
  7. 동행
  8. 구지가
  9. 코피가 날 무렵

공유하기 버튼

 

미묘의 "Left Words"에 당신의 모습을 보내주세요. 미묘합니다




플라이어 디자인 : __hen

Left Words (feat. Big Baby Driver, Preview) by mimyo

장소, 내용, 앵글, 길이의 제한이 없다고는 했으나, 화질의 제한도 없습니다. 휴대폰 카메라나 노트북의 웹캠, 똑딱이 카메라, DSLR, 방송국 카메라 등 어떤 카메라로 찍으셔도 좋습니다. 낯을 가리시는 분이라면 화장, 분장, 변장, 둔갑의 제한도 없으며, 적극적이신 분이라면 의상이나 얼짱각의 제한 또한 없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보내주실 곳: tres.mimyo@gmail.com

공유하기 버튼

 

2012년 4월 8일. 이글루잉

1. 좀 도피하고 있는 요즘이다. 꿈자리도 뒤숭숭한 것이. 뭐 무서운 꿈을 꾸고 그런 게 아니라, 꿈에 등장하는 테마들에서 현실도피의 기운이 느껴진다. 작업으로부터도 좀 도망치고 있기도 하고. 비쥬얼드나 긁고 사랑과전쟁을 정주행하며 시간을 불태우고 있다. 그러면 안 되는데.

2. 잠시 트위터를 끊고 있다. 일단 총선 끝날 때까지는 들어가고 싶질 않아서. 이러다 또 불쑥 들어갈지도 모르겠지만. 타임라인의 문제지 트위터의 문제는 아니어서 mimyo_만 트위터 앱에서 계정을 빼려고 했는데, 이게 계정 자체를 삭제하는 건지 앱에서만 빼는 건지 구별이 안 돼서 앱을 삭제했다. 뭐 당분간이니 상관 없겠지.

삼국지 읽듯이 정치를 읽는 취미도 없고 의회정치에도 무지한 편이라 잘 모르겠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진보신당 분당 이슈만큼이나 중요한 문제 같은데 다들 조용하기도 하고. 그... 음 모르겠다. 그냥, 나는 정말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있다가 문득, 자의식 과잉스럽게도, 누군가는 내가 일전의 모 밴드나 모 공연은 열심히 실드 치더니 이번 건 갖고 펄펄 뛴다고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ㅎㅎㅎㅎㅎ 없겠지 싶지만, 그런 분 계시다면 진지하게 병원에 가 보시.. 아니 뭐, 정신건강에 관해서도 나는 문외한이니 뭐 알아서 하시고.

3. 문득 생각이 나, 비쥬얼드를 하며 대충 덧셈해 봤는데, 컴퓨터와 기타, 소프트웨어를 포함해 내가 가진 음악장비의 구매액이 조금 있으면 대충 천만원에 달할 것 같더라.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건데, 플럭인이 20만원이면 중저가에 해당하는 걸 생각하면, 음, 아니다,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천만원의 장비에 해당하는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여기저기에 비용이 분산돼 있는 탓도 있겠지만은, 사실 잘 캘리브레이션?을 한다면 5백만원 이하로도 더 좋은 장비로 쾌적하게 작업하면서도 만들어낼 수 있는 것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결국 모든 건,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로 수렴되는 것인데. 괜히 이런 저런 생각들이 든다.

4. 가끔씩 자신의 예민함을 과시하기 위해 과격한 주장을 하며 경찰국가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참 그... 외부에서 주어지는 욕망의 자극과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의 괴리가 사람을 얼마나 깊은 착란으로 몰고 가는가 하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군대에서 인생을 배운다고 하는데, 그게 어느 정도는 맞는 이야기인 게, 좌절된 욕망과 낮은 자존감이 낳는 병리적인 심리를 매우 잘 관찰할 수 있는 곳인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휴가나 외박에 나가면 바깥 세계의 여자들은 모두 섹스에 굶주려 헐떡이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으며 여태 자신이 실패한 것은 내숭을 거절로 이해했기 때문이라 믿)는 애들이 정말로 있다니까. "이상한 사람"은 자본주의와 계급사회가 진행될 수록 많아진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뭐, 그저 안쓰러울 따름이다.

덧붙이자면, 똘망하고 씩씩한 아가씨들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보호하는 세상이 오기 전까지는, 누군가의 욕망의 좌절을 형법으로 푸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5. 글재주가 점점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어릴 때는 내가 나름 글을 좀 쓰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 쫌 귀여웠던 듯. ㅎ) 요즘은 내가 쓸 수 있는 글의 한계가 어디쯤인지를 좀 알 것 같다. 최근에는 블로거 글로서는 나쁘진 않은 듯, 싶은 글을 하나 썼다. 여튼, 음악을 말과 글로 설명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고 또한 충분히 가능한 일인데, 문제는 그것이 힘이 든다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딴에는 힘내서 써보려고 하기도 하는데, 힘들다는 이유로 불가능하다고 해버리거나 쓸데 없다고 해버리는 사람을 보면 좀 약이 오른다고 할까. 아 오늘 일기는 자의식 과잉 쩌네영. ㅎ

음악비평을 잉여로 간주하는 경향이 한국은 조금 더 강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하는데, 우리가 음악의 내적체험과 괴리된 "속주 기타리스트 베스트 5" 류의 무의미한 쓰레기 글들을 자꾸 읽으며 자라왔기 때문은 아닌지. 유신 이전은 음악비평도 훌륭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는데, 내가 잘 모르는 유신 이전의 음악에 관한 글을 읽어서 얼만큼 이해할지는 모르겠으나, 한번 읽어보고 싶긴 하다.

6. 조그만 전시를 하나 봤는데, 아슬아슬함에 관한 전시...로 내게는 느껴졌다. 덤덤한 아슬아슬함이 재밌긴 했는데, (거의) 정지돼 있는 몇 작품에서의 아슬아슬함이 머리로 이해된 것에 비해, 비디오의 경우는 '저것보다는 훨씬 더 아슬아슬하게 해줘야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각으로 느껴지는 것도 늘 주관적이고 불안정한 것이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도 어떤, 감각의 반올림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7. 작업해야겠다.

공유하기 버튼

 

Loveless Tribute 잡담. 음반_잡담

Loveless Tribute (2012.03.07, 일렉트릭뮤즈 & Electric Vybe)

  1. Only Shallow (비둘기 우유)
  2. Loomer (전자양)
  3. Touched (선결)
  4. To Here Knows When (Sei & Swann)
  5. When You Sleep (조월)
  6. I Only Said (GhostMutts)
  7. Come In Alone (Ninaian)
  8. Sometimes (기합)
  9. Blown A Wish (Soil Sugar Poco Largo)
  10. Whay You Want (Big Baby Driver)
  11. Soon (Loom)

이런 생각을 해본다, 왜 지금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인가. 물론 러블리스 앨범 발매 20주년이니까 그렇지만..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에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악명 높은 스튜디오 작업이 가장 먼저다. 약 20 곳의 스튜디오를 전전하며 3년 동안 거액을 쏟아부어 레이블을 파산시킬 뻔했다는. 비용 부분은 케빈 실즈가 루머라 일축했다고 하지만, "우리 돈으로 다 썼어"란 맥락이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 증언은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인데다 케빈 실즈가 결코 상냥한 사람도 아니니, 아주 근거 없는 루머라고 제쳐버리기는 뭐할 것이다.

어쨌든 1989년~1992년과 2012년은 무척 다른 환경이다. 마침 바로 얼마 전에도 빌리 코건이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을 처음 들었던 때를 회상하며 "대체 어떻게 이런 소리를 내는지,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는 것도 아니고.."라 했지만, 그 외에도 홈스튜디오나 모바일 장비로 스튜디오 퀄리티에 수렴하는 작업을 할 수 있는 지금에서는 특별하게 보인다. 권력과 자본이 상징적, 실질적으로 얽힌 "월 오브 사운드"를 1992년에 마이너 밴드가 고통스럽게 만들어낸 사건과, 2012년의 홈레코딩 상황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어디선가 읽기론 케빈 실즈가 딱히 특별한 기술을 이용한 건 아니고 노가다를 많이 했을 뿐, 실제로는 오히려 "심플한" 작업에 가까웠다고도 하니, 스튜디오에서 보낸 3년이란 시간을 홈레코딩과 비교한다면 고가의 장비나 대단한 기술보다는 긴 시간에 걸쳐 수시로 작업하고 실험해볼 수 있는 가능성 면에서 바라보는 게 적합하리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1992년의 이 악명 높은 앨범이 지금의 우리에겐 더더욱 묵직한, 교과서보다는, 바이블처럼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앨범의 프로듀싱은 매우 짜임새가 있다. 1992년반의 트랙 순서를 그대로 사용한 것은 제약일 수도 있는데, 참여한 팀들의 컬러가 각자 살아 있으면서도 전체가 앨범으로서 잘 기능하고 있다. 역사상 수많은 뮤지션들을 인도로 여행을 보내온 알 수 없는 힘이 주관한 것이 아니라면, 각 곡의 배치에 따라 어느 팀에게 맡길 것인지가 조율된 것이 아닌가 상상해 본다. 물론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트리뷰트 앨범에 브로스텝 뮤지션이나 켈트 민속음악가가 참여한 건 아니니 사운드적인 통일감이 어느 정도 있는 점도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이 만든 곡이라도 앨범으로 만드는 건 또 다른 얘기니, 기획과 프로듀스 차원에서의 노력이 섬세했다 해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각 곡들은 전부 원곡을 익숙하게 떠올리게 한다. 곡을 커버했기 때문만은 아닌, 음, 레거시가 느껴지는 곡들이다. 그러면서도 저마다의 색깔과 저마다의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인플루언스을 보여주고 있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을 혹은 드림팝이나 슈게이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나의 블러디 발렌타인은 이렇지 않다능!"이라는 사람만 아니라면 누구나 기쁘게 들을 수 있을 만한 사운드들로 채워져 있다. 가장 예외적인 것이 빅베이비드라이버의 (거의) 어쿠스틱한 10번 트랙인데, 이 분은 목소리 하나만으로 슈게이저를 하실 수 있는 분이니..

그 와중에서 묘하게 일렉트로닉 비중이 높은 것이 또한 흥미로운 부분이다. 내가 모르는 몇 팀은 잘 모르겠지만, 오늘날처럼 누구나 다 홈레코딩으로 시작해 홈레코딩으로 끝내는 게 너무나 당연한 환경이 오기 전에 어느 정도 스타일이 잡힌 분들이다. 홈레코딩 포스트록으로 음악을 처음 시작할 수도 있게 된 오늘의 환경과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이후의 슈게이저, 그리고 1992년 사이의 타임라인을 보는 것 같아 재밌다. 이런 선명한 대차대조표가 이 앨범의 곳곳에서 상징적으로, 사운드적으로 튀어나오고 있다. 그래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이 너무 좋아영!"을 넘어서는 20주년 기념 트리뷰트로서 확고한 의미를 갖는 결과물이 되지 않았나 한다.

------
이 앨범을 쭉 듣고 있자니,
1) 1989년~1992년에 새롭게 상용화된 스튜디오 기술이나, 출시되어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에 의해 사용된 장비의 타임라인 같은 자료가 있다면 구경하고 싶기도 하고. (분명 있을 것 같긴 한데.. 혹시 아시는 분 계시면 제보 좀..)
2) 지금은 음원으로 듣고 있는데, 라이너 노트도 꼭 읽어봐야겠다 싶고.
3) 1992년의 러블리스를 다시 듣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내 mp3가 전부 담겨 있는 하드가 (멀쩡한데) 인식을 못 시켜서 못 듣는 게 컴맹컴맹의 깊고 깊은 한이로고. 사실 외장 하드에 따로 복사해둔 폴더가 있어서 거기 있겠거니 했는데 왜 없니, 분명 리핑한 기억이 있는데.. #컴맹컴맹.

공유하기 버튼

 

2012년 4월 1일. 이글루잉

며칠 전부터 죽음을 생각한다. 물론 죽겠다는 건 아니고.. 죽고 나면 어떤 상태일까, 뭐 그런 식의 것.

나는 언젠가부터 죽은 다음에는 그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2009년 말에 그 친구가 내게 90년대 식으로 못할 짓을 하던 때부터였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얼마나 심한 짓을 당하고 있는 것인지 순딩하게도 깨닫지 못했던 나는 배신감을 느꼈고, 그 일이 있은 이후로는 오기 반, 그녀에게 복수를 하는 심정 반으로 그런 생각을 굳혔던 것도 같다.

꽤 어릴 때부터 주위의 이런 저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죽음에 관한 생각들을 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는, 진지한 얼굴로 내게 그 이야기를 꺼낸 사람들 중 사후세계를 이야기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것 자체가 어떤 용기의 허들이 필요하기 때문인지 몰라도, 지긋하신 분들도 어린 친구들도,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물론 지금은 싫지만, 이란 단서가 종종 붙는 정도 선에서 말이다. 그 중 일부는 허세였을 수도 있다 생각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그 사람들은, 가끔은 스무살 언저리의 어린 나이에도,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살기 시작할 수 있었을까, 하고 죽 고민해 왔다. 성숙하지 못한 탓인지 몰라도,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바라보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그런 세계를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람찬 삶을 산다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행복한 삶을 산다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자손을 남기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다 해도 나의 존재가 소멸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내가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내게 다가올 죽음을 받아들일 수도,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나 자신을 상상하기도 힘들다.

공유하기 버튼

 

1 2 3 4 5 6 7 8 9 10 다음


트위터위젯